마나님과 아침 식사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 끝에 우리나라 영화에 천만 관객이 들었다는데 "왕과 사는 남자"를 한 번 봐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을 꺼낸다

너무도 오랜만에 상영관을 찾는 일이라 우왕좌왕 살펴보다가 T Membership 할인을 통해 티켓팅을 했다
동기들과 점심에 7명이 만나 장수하늘소에서 한우국밥을 먹는데 국물맛이 개운하고 속이 풀린다고 좋아들 한다

근처에 있는 카페 휴앤다담에 가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고즈넉한 한옥집에서 왁자지껄 차를 한잔씩 나눠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와 CGV서전주를 찾아 가는데 어딘지를 몰라 내비가 인도하는 대로 가봤더니 서부 신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영화 관람의 국룰인 팝콘과 제로콜라를 사들고 8층에 위치한 3관에 들어서자 서너 팀이 앉아 있고 텅 빈 객석에 화면조차 꺼져있다

상영이 시작되기 전에 단종역을 맡은 박지훈의 인터뷰에서 외로운 단종이 따뜻한 사람으로 몰입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아끼고 사랑한 사람들 (같이한 백성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영화 시작 초반에 단종의 폐위와 역모를 꾀한자들에 대한 모진 고문과 고통스러운 함성들 사이로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는 나지막한 절규와 슬픔을 머금은 애절한 눈빛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식음을 전폐하다가 거듭된 권유로 비로소 먹기 시작한 밥상머리에서 수라상보다 맛이 있다며 국은 누가 끓였고, 산딸기는 누가 따왔느냐고 묻는다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막동어멈과 이천댁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감동과 따뜻함이 솟아난다
마치 김춘수의 시처럼 말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비로소 꽃이 되었다"

영월의 깊숙한 촌동네 광천골 촌장 엄흥도와 단종 이홍위의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면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한명회의 언동에 모멸감을 느낀 노산군이 숙부 금성대군과 빼앗긴 왕위로 복귀하려고 유배지를 떠나려 할 때 나눈 대화가 아닐까 싶다
수차례 만류에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가야 한다고 결기 어린 단종을 막아서는 엄홍도가 "아끼는 사람 중에 (나도)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대는 아닌가?"라는 짧은 대사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강물에 던져진 노산군의 주검을 물속에서 부여잡고 나가는 엄흥도의 오열하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엔딩을 맞이하고 자막으로 단종의 복원과 묘소가 있는 청령포의 장릉 옆에 엄흥도를 묻어줬다는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역사가 지우려고 했던 이야기 단종의 서사를 가슴 뭉클하게 그려냈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피어난 스토리를 담아낸 영화로,
들어갈 때는 관객이었지만 나올 때는 단종시대의 백성이 되어 나온다
영화 속 엄흥도가 단종을 끝까지 지켰던 그 마음은 무얼까?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왕(가장 소중한 가치)은 무엇일까?
오히려 지나친 관심이 무례하다는 말로 각자의 삶을 사는 시절이지만,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사람이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사람의 진심이다
왕과 하층민이 결코 한 상에서 마주할 수 없는 시대에 계급사회를 뚫고 밥상머리에 앉아 따뜻한 밥냄새에서 피어나는 사람의 온기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박제될 것 같다

영화를 관람하고 삼성스토어에 들러 핸드폰 초기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트에서 광어회를 가지고 들어온다

헬스장에 들러 스트레칭으로 몸을 살짝 풀고 들어왔는데 영화관에서 몸이 다소 썰렁했는지 자꾸 콧물이 흐른다
맛있는 소맥을 한 잔 하려 했는데 다음으로 미루고 와인 한잔으로 대신하고 감기약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장수하늘소 혁신점 #카페 휴앤 다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20260310)